새벽 어스름 사이로 보이는
[이달연]너의 마음은 물총처럼. 본문
첫인상이란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름조차 제대로 모를 때 오로지 느낌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여 이후로도 그 첫인상이 향수처럼 남아 그 사람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승언은 첫인상을 중요하게 여겼다.
남승언에게 있어서 우주원은 첫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
누가 선택할지 알 수 없어서 제일 무난하게 준비했던 첫 비대면 데이트를 즐겁게 받아들여 주던 그녀를 바라보며, 승언은 직전 연애에서 등에 얹힌 연애의 무거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것이 우주원이라는 이름의 여행의 시작이었다.
이달연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각자의 취향과 개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승언은 대학생 시절에서나 느껴봤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즐겁게 떠들고, 때때로 장난을 치면서도 그는 문뜩문뜩 자기도 모르게 주원을 돌아보았다.
우주원은 여러모로 독특한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마치 봄에 지는 붉은 낙엽처럼 같이 있을 수 없는 두 조합이 하나로 뭉쳐 그녀를 이루고 있었다.
‘저 이미 택시 타고 도아랑 병원에 가고 있어요’
다른 이들과의 선을 적절히 긋고 있으면서도
‘전 승언님 이상형에 남아 있을게요~’
어느새 한 발자국 훅하고 다가와 있기도 했다.
차분한 듯 웃음이 많고,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남자들끼리 모인 채팅방에서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항상 그 끝에는 우주원이 서 있었다. 이상형이 우주원에 가깝다는 견우부터 대화를 길게 이어가지 않는 서하진 또한 주원의 이야기에는 한발 걸치고 들어왔다.
‘주원 누나는’
‘주원이는’
어린아이도 아니었기에 다들 주원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 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자신 또한 좋은 첫인상과 함께 주원에게 호감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츠 안쪽의 거친 면과 맞닿은 것처럼 가슴 속에 불편함이 그를 건드렸다.
그 까끌까끌함은 제주도를 떠나기 직전까지 계속되다가
‘승언 오빠!’
세 번째로 ‘우연히’ 다시 만난 주원의 모습에 절로 나오는 웃음과 함께 사라졌다.
약속하지 않고도 누군가를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가 없었다. 결국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도 했으나 그만큼 가치 있는 만남이었다.
‘주원이를 좋아하는 걸까?’
모르겠다. 누군가를 좋아해본지 오래된 그는 지금 자신의 마음 상태를 100퍼센트 확실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직 남은 시간은 그에게 현재의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만 해도 된다고 속삭였고 승언은 그 마음을 간직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1년과 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새로운 하루를 보낼 때 마다 새로운 주원의 계절이 그를 물들였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게임을 통해 각자에 대해 알아가면서도 그의 시선 끝에는 어김없이 주원이 있었다.
그는 찰랑거리며 채워져 가는 마음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주원이를 좋아하는 걸까?’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찰랑거리는 마음의 울림이 좋았다. 그의 마음은 분명 호감을 넘어가고 있었고 정확히 이름을 붙일 스티커 한 장만 더 있다면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마스터님이 게임에서 얻은 보상인 데이트권을 사용하라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주원을 선택했다.
‘너랑 놀고 싶어서’
[너를 더 알고 싶어서]
무엇을 좋아해?
나와 무엇을 하고 싶어?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나는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그것을 오늘 알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승언 오빠!”
그리고 그 확신은 작은 아이들의 물총 세례가 되어 날아들었다. 밥을 먹으러 향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물총 축제를 간과한 게 문제였다. 길을 걷다가 만난 아이들에게 항복을 외쳤지만 그들에게 자비는 없었고, 주원이라도 맞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를 뒤로 숨겼다.
결과는 물에 젖은 생쥐꼴.
‘넘보지 말라고 하늘에서 내리는 벌인가’
문득 드는 생각에 물기를 털면서 허허롭게 웃었다. 아직 그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마음에 벌을 내린 거라면 억울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괜찮아요? 물기 좀 봐, 다 젖었네”
그래도 그를 걱정하는 주원의 모습에 억울함이 조금은 가셨다. 그러다가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에 일단 그녀를 진정시켰다.
“괜찮아 주원아, 주차한 곳 근처에 화장실 있을테니까 거기 좀 다녀올게”
일 때문에 트렁크에 여러 가지를 넣고 다니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수건을 꺼내 물기를 닦으면서 어쩐지 어렸을 적 물총 싸움을 하던 추억이 되살아나 손이 근질근질해졌다.
‘그래도 주원이가 있으니까’
생각해보니 그녀 또한 물총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었다. 조금 젖어있던 주원이 떠올라 승언은 개구쟁이 같은 마음을 트렁크 안으로 꾹꾹 눌러버렸다. 밥 먹으러 가다가 물벼락을 맞았는데 거기에 더해 물총 축제에 어울리자고 하는 것을 좋아할 여자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여자가 있었다.
“승언 오빠?”
“응? 왜, 앗 차가워!”
“하하하! 방심은 금물이죠!”
차가운 물줄기가 그의 가슴을 강타했다. 좀 전에 다 젖은 그를 걱정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물총 소리만큼 시원한 웃음이었다. 거기에 반격을 대비한다는 듯 한쪽 손에 우산을 꼭 쥔 모습이 어쩐지 웃겨서 결국 그도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웃는 걸 보니 물세례가 더 필요한 거죠?”
“으앗, 주원아 살려줘!”
“문답무용!”
우산을 내려놓고 다시 물총을 장전하는 모습에 슬그머니 뒷걸음치던 승언의 시야에 문뜩 꽃집이 걸렸다. 가게 안쪽에 놓여있던 색색들이 다른 꽃들을 엮어 만든 꽃다발이 주원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꽃집을 향했다.
“앗 도망가기에요?!”
“미안 주원아 금방 갔다 올게!”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의 발걸음은 서서히 빨라져 꽃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뛸듯한 형태였다.
“어서오세요~”
“저기 놓여있는 꽃다발 좀 주시겠어요?”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꽃집 직원이 움직이자 승언은 자기도 모르게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꽃집에 도착해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연애는 무거운 것이었다. 돌을 들고 길을 건너는 사람처럼 아슬아슬하고 무거운 감정의 연속.
하지만 물총을 맞고도 오히려 함께 웃어주는 주원은 달랐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바랐던 바와 같이 편안한 연애를 할 수 있다며 그의 마음속 돌을 물총으로 쏘아 부숴주었다.
“좋아하는구나”
큐피드의 화살처럼 그의 마음에 쏙 들어온 주원이 마음 속 스티커에 이름을 붙였다.
그 마음은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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