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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어스름 사이로 보이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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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 못 봤어 종한구?” 한 해의 마지막 날 오후, 만장정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잤던 종한구는 뜻밖의 손님을 맞이했다. 푸른빛 사이드 포니테일에 반창고가 인상 깊은 소녀, 그들의 지휘사인 레체였다. “이거야 별일이군요? 둘이서 같이 있지 않다니, 혹시 싸웠습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단호히 말하면서도 레체의 눈동자는 쉼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에 그의 감이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라 신호를 보냈고, 종한구는 할 일도 없는 겸 그 분위기에 올라탔다. “그렇지 않다면 왜 두 분이 함께이지 않으신 건가요?” “그거야.....” “왜 카지가 소원 성취 부적을 구매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을까요?” “그건.......아니 역시 카지를 봤잖아!”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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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이란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름조차 제대로 모를 때 오로지 느낌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여 이후로도 그 첫인상이 향수처럼 남아 그 사람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승언은 첫인상을 중요하게 여겼다. 남승언에게 있어서 우주원은 첫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 누가 선택할지 알 수 없어서 제일 무난하게 준비했던 첫 비대면 데이트를 즐겁게 받아들여 주던 그녀를 바라보며, 승언은 직전 연애에서 등에 얹힌 연애의 무거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것이 우주원이라는 이름의 여행의 시작이었다. 이달연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각자의 취향과 개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승언은 대학생 시절에서나 느껴봤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즐겁게 떠들고, 때때로 장..
성스러운 별 교회에도 짙은 여름이 찾아왔다. 신의 안배와 같은 강렬한 햇빛에 신자들의 이마에도 구슬땀이 맺히는 가운데 유일하게 계절을 잊은 인쿼지터가 교회 안에서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신자들이 없는 이른 시간에 짧게 기도를 마치는 그였지만, 오늘따라 그는 이른 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움직임에 작은 미동도 없었다. 신자들은 저들끼리 저 ‘그레이무’ 신관이 이 시간까지 기도를 드리다니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니냐며 수군거렸고 그 수군거림은 당연히도 누군가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그레이무, 그렇게 딱딱하게 기도하고 있으면 신자들이 걱정한대도~” 여름에 맞춰 앞섶을 평소보다 더 편안히 풀어헤친 세츠는 그레이무의 옆에 있던 의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의 기도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제야 바위보다..
구시가지의 어느 허름한 골목 구석. 평소라면 흙먼지를 날리며 아무도 없을 공간에 갑작스럽게 긴 검은 선이 나타났다. 마치 칼에 베인 자국 같은 검은 선은 서서히 공간을 벌리면서 누군가를 뱉어내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색을 다 빼앗긴 잿빛이 감도는 흰 머리칼, 온몸에서 보이는 전투의 흔적, 그리고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꽉 쥐고 있는 검 한 자루가 전부인 소녀. 그녀의 이름은 카지. 수만 갈래 중 한 송이의 모형 정원에서 태어난 신기사였다. ------------ 이봐,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야. 카지라는 신기사는 고등학교에서 각성하고 신기사로서 흑문과 최후까지 맞서 싸웠어. 그녀에게 다른 점은 그저 만나지 못했을 뿐이야. 지휘사, 바로 너를. -----------